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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운관측후일지

관상감 교수 방정식(方貞識)은 제 방에 멍하니 앉아 열려 있는 문 밖으로 어둑어둑해지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어쩌자고 집을 동향으로 지었던가. 인왕산 동쪽 산기슭의 집. 이른 저녁에도 태양은 이미 산 반대편으로 넘어가고, 남아 있는 빛줄기조차도 동쪽으로만 열려 있는 이 집으로는 들어오지 않는다. 산세를 따라 구불구불 자리를 잡다 보니 어쩔 수 없긴 했다만. 정식은 한숨을 한 번 푹 내쉬었다. 평소와 달리 이런저런 잡생각이 떠오르는 것은 그 날따라 영 꺼림칙한 느낌이 들었던 탓이다.

그가 45개월 임기의 천문학 교수 직을 맡게 된 것은 작년 봄, 그러니까 15개월쯤 전이었다. 이제 고작 삼 분의 일이 지나갔을 뿐이었는데, 그간 너무도 많은 일이 있었다. 정식은 지금 맡고 있는 생도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모든 일이 끝나고 나서 가장 마지막으로 맡은 이들이었다. 이들에게는 아무 일 없어야겠지…. 정식의 눈빛이 바뀌었다. 초조한 표정을 하고선, 그는 대문 밖을 서성이는 한 그림자로 시선을 옮겼다.

'…?'

정식의 집은 험한 산 중턱에 걸쳐 있었기에, 이 시각에 밖에 돌아다니는 사람은 자주 볼 수가 없었다. 그런데, 저 자는 누구인가…? 정식 은 그제서야 그 형체의 거동이 쓰러질 듯 말 듯하게 불안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의문을 거두지 못하며 정식은 천천히 일어나 그에게 다가갔다.

"…이보게…? 무슨 일인가."

"…!"

정식이 다가가자, 기다렸다는 듯 그 앞에 쓰러지다시피 무릎을 꿇고 주저앉은 이는 열대여섯 살 쯤 되어 보이는 어린 소년이었다.

"저…. 어르신께서 방정식 교수십니까."

"그렇네만, 역시 날 찾아온 겐가."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눈조차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는 채로.

"흐음. 내 이름과 거처는 어찌 알았고…?"

아이는 바로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잠시 고민을 하는 눈치를 보이다가 고개를 약간 숙이면서 중얼거렸다.

"…듣기로는, 아무 연줄 없는 사람이 관상감 생도로 들어가려면…. 인왕산 동쪽 기슭의 제일 높은 집을 찾아가 보라고…."

"하…. 도대체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문은 어디서 퍼진 겐지…. "

정식의 말을 듣고는 아이의 표정이 금방 어두워졌다. 얼굴조차 모르는 녀석인데, 이거 이야기를 들어 봐야 하나 말아야 하나…. 정식은 고민했다. 이런 상황 하나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약해빠진 자신의 마음을 내심 원망하면서 정식은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아무리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고 해도, 내가 무슨 이유로 이름도 모르는 자넬 입속시키려고 목숨을 걸겠는가?"

정식이 그 아이를 아무 조건 없이 보증해 준다면, 만약 나중에라도 무엇이든 그에 관한 정보가 잘못되었다는 것이 밝혀지게 되면 그에 대한 것을 정식이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아닌가.

"…부탁드립니다. 도와 주십시오."

아이는 고개를 푹 숙였다. 정식은 어떻게든 상황을 피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머리를 굴려 이리저리 변명할 거리를 찾았다. 그래, 지금으로서는 저 녀석은 생도로 들어갈 수 없다. 빈 자리가 없는 탓이다.

"아…. 사실 그러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네. 생도의 정원이란 게 있거든. 지금은, 마흔 명이 다 채워져 있단 말이야."

관상감 천문학 생도의 정원은 마흔 명. 그리고 현재 그 자리들은 모두 채워져 있는 상태였다. 아마 지금대로라면, 일러야 다음 식년시가 끝나고 나서야 새로 자리가 생길 게다. 대충 구슬린다면 저 아이, 금방 돌아가지 않으려나. 허나 그 예상은 빗나가 버렸다.

"…그러면, 임시로라도 저를 넣어 주십시오."

"임시로라니."

"매, 맨 뒷 자리에서 단지 수업만 듣는 정도라도, 허락하여 주신다면…."

아이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내가 보기엔 그게 더 어려운 일이네, 그만 포기하고 가 줬으면 좋겠다만…. 정식은 제 이마에 손을 얹고 고개를 저었다. 좋지 않은 느낌은 이 때문이었던 모양이다. 뭐가 이리도 피곤한지.

- 까악, 까악.

까마귀 소리가 그 틈에 마당 너머로 울려퍼졌다. 저 녀석은 이 소리가, 어두운 밤이 무섭지도 않은가, 돌아가고 싶지도 않은가….

*

"…나으리…! 방 교수 나으리…!"

진수가 제 앞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 버티기 시작한 지 채 일 각약 15분에 해당함이 지나지도 않았는데, 멀리서 발자국 소리와 함께 고함 소리가 들렸다. 이 무슨 이상한 날인가. 다른 날 같지 않은 일들이 여러 개 겹쳐서는. 평소였다면 슬슬 여유 있게 잠자리에 들 준비를 했을 시각인데…. 정식이 그리 생각하고 있을 동안,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한 관원이 대문 안쪽으로 뛰어들어왔다. 정식은 얼굴만 아는 이였다. 아마도, 과거를 거치지 않고 입속해 온 자 중 하나일 게다.

"나으리, 생도 하나가…."

그 말을 전하러 온 관원의 표정과 말투가 이미 모든 걸 알려 주고 있었다. 정식의 표정은 점차 굳어 갔다. 이런, 어쩐지 아까부터, 불안한 기운이 스며오더라니.

"한강 가에서, 몸을 던졌답니다…."

"…뭐, 뭐라고…."

"…시신조차 찾을 수 없게 되었다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정식은 말 없이 무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는 찾아온 관원에게 다른 것을 묻지 않았다.

반 각 정도의 시간이었건만, 평소의 몇 배의 속도로 훌쩍 지나간 듯 했다. 비보를 전해 준 관원은 그 사이 제 집으로 돌아갔다. 아니, 다시 현장으로 갔을지도 모른다. 정식은 어떻게든 마음을 추스리고, 다시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았다. 아까 저를 찾아왔던 그 아이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그러려고 하지 않아도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만 자네도, 집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 어떠한가."

"그럴 생각 없습니다."

그 동안 마당에 점차 어둠이 내려 아까보다 훨씬 희미하고 어둡게 보이는 아이의 표정은, 정식 자신보다도 무덤덤하고, 단호했다.

"방금 그런 일을 보았음에도, 여전히 마음을 바꾸지 않은 겐가."

"아까는, 자리가 없기에 저의 입속이 불가능하다 하시지 않았습니까."

정식의 눈빛이 흔들렸다. 지금 이 자가 무슨 말을.

"뭐, 뭣이."

"…방금, 그 분….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 분으로 인해 결원이 생기지 않았습니까. 거기에, 제가 들어가게 해 주십시오."

떨리는 말투, 올라간 입꼬리. 아이의 표정에선 어떠한 걱정도, 두려움도, 동정도, 안타까움도 느껴지지 않았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자기 바로 앞에서 뻔히 다 보았으면서, 제 표정, 몸짓, 입에서 나오는 말 한 마디 한 마디까지도 다 지켜보았으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얼굴에서 나오는 미세한 밝은 기운이 정식의 눈동자를 눈부시게, 아니 불쾌하게 덮었다.

어떻게든 다시 돌려보내고 싶었다. 녀석과 계속 마주하는 것은, 정식으로서는 더 이상 감당할 수가 없었기에. 뭔가 다른 구실이 필요했다. 머리가 더는 돌아가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창과 화살이 관자놀이를 계속 찔러대었다.

"무섭지 않나. 저렇게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거, 방금 알지 않았나."

…아, 고작 이것인가.

"저는…."

그러나 그 말을 들은 아이의 표정은 바뀌었다. 더는 웃는 낯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잘못되었단 것을 알았지만, 그 표정을 계속 들여다보니, 마음의 파도가 잔잔해졌다. 이번엔 불쾌하지 않은 상쇄 간섭이었다. 분명.

"전, 만물의 이치(物理)를… 깨닫고 싶을 뿐입니다. 그럴 수만 있다면, 소생… 죽어도 여한 없습니다."

말이란 얼마나 쉬운 것인가. 그간 얼마나 많은 이에게서 이와 비슷한 말을 들었던가. 관상감에 생도로 입속하려는 이는, 아니 전 현직 관원을 막론하고 살면서 적어도 한 번 이상은 하게 되는 말 아니었나. 그런데도 어딘가 다르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아끼는 제자 하나를 잃고 난 슬픔의 파도는, 이 어린 아이가 하는 말 한 마디의 파도와, 그 높이도 너비도 꼭 맞아 떨어진 듯 하다. 그래서 이리도 평온하게, 마음이 잔잔해졌나 보군.

"…자네 이름이 뭔가."

정식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아이의 표정이 밝아졌다. 전과 같은 미소. 그러나 이번엔 그 때의 불편함과는 다른 것이 느껴졌다.

"…보배 진 자에 빼어날 수 자를 쓰고, 이 진수(李珍秀)라 합니다…!"

처음 듣는 이름…. 발이 꽤나 넓은 정식이 얼굴도 본 적 없고 이름도 들어 본 적 없는 이라니 정말 연줄이라곤 하나도 없는 아이인 듯 했다. '살아남기는' 힘들겠군 그래. 정식은 씁쓸한 표정으로 방에 들어가, 먹을 갈아 작은 종이에 정돈되지 않은 작은 글자로 서너 줄 정도를 적어 진수의 손에 올려 주었다. 입속을 준비하는 데 필요한 것들이었다.

"여기 있는 대로 빠짐없이 챙겨, 준비되면 다시 찾아오게. 다음엔 이런 야심한 시각에 찾아오진 말고…."

"아, 알겠습니다."

"그러면…. 난 이만 들어가 보도록 하겠네."

그 말을 마지막으로 정식은 몸을 돌려, 뒤를 한 번도 돌아보지 않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참았던 눈물이 조금씩 흘렀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려는 걸까.

정식은 방 안에서 이불을 가지런히 펴고 가만히 누웠다. 몇 날 며칠을 그렇게 기다려도 끝까지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말이다, 이상하게도…. 올 것은 꼭 온다. 모든 것이 꼭 맞물려 끝없는, 이득도 손실도 없는 회전을 반복하고 있지 않나. 이런저런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덮었으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 정식은 결국 잠에 들었다.

과학(수학, 물리, 화학, 천문학)덕후/그림+글+작곡 등등 이것저것 합니다/트위터 @Owlbam_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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