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壹_望

서운관측후일지

프롤로그부터 새로 쓰고 있으니 읽어주세요!

리뉴얼 업데이트 현황: 프롤로그 ● / 에피소드 1 ●○○ / 에피소드 2 ○○


"응? 그런 거 아니네."

"예? 아니라고요?"

다섯 명의 신입 관원들은 일제히 푸른 관복 차림의 나이 많은 사내의 말에 놀란 기색을 보였다.

"뭘 그리 놀라는가? 자네들 같은 일개 권지는 녹봉을 받는 자리는 아니라니까? 자네들 생도 시절에 암기와 역산만 열심히 했나 보구만. 혹여 나라의 법과 제도에 대해 관심을 가져 본 적은 있는가?"

"예, 있습니다. 판관 나으리."

진수가 당당하게도 손을 들고 자신 있게 답했다.

종 5품, 판관이란 위치에 있는 이의 이름은 유이수(劉利守)라 했다. 스쳐가는 인연은 고사하고 혈연, 지연까지도 철저히 무시하는 이. 당대 사람으로서는 드물고도 드물게 공정성만을 추구하는 이로 널리 알려져 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녹취재라는 제도 덕에 어렵지 않게 판관의 자리에까지 올라 있었다. 물론 신임을 받고 있는 자이기도 했다. 또한 진수와 비슷한 연배의 생도들에게는, 견습생이었던 시절 아주 사소한 근거나 이유를 일일이 찾아 가며 불통을 날렸던 불통신궁(神弓)으로 또 한번 널리 알려져 있는 자였다.

"이 봉사 자넨 닥치게."

진수의 말에 대한 이수의 대응 역시 그 명성만큼이나 단호했다.

이 봉사라는 호칭은 식년시 음양과에서 장원의 성적을 거두었던 진수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유일하게 녹관직인 종 8품 봉사를 제수받은 자이므로, 실은 그에게 이런 논의는 애초부터 불필요했단 의미였을 터. 물론 특유의 눈치라곤 물에 말아 먹은 말투가 이를 부각시켰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만.

"수, 숙부님. 아무리 그래도 저 어린 아이에게 닥치라니요."

다음으로 입을 연 것은, 그 중요하다는 나라의 법과 제도에는 별 관심 없어 보였으나, 그나마 다섯 명 중에서는 이수의 유일한 친척.
판관으로서의 이수의 말에 대꾸를 할 만한 자격만은 가지고 있었던 지함이었다.

"으응. 이런 공적인 자리에서 꼭 나를 가리켜 그리 불러야 했나?"

"…예? "

아니다. 실은 그럴 것이라 스스로 생각하고 있을 뿐이었다.

"또, 저 자는 정당한 절차를 거쳐 관원이 된 자이지 어린아이도 아니지. 허허. 그러니 자네도 닥치고 있게."

턱을 괴고 지함 쪽을 바라보고는 싱긋 웃으면서 이수는 제 조카에게 따스한 한 마디를 날렸다. 이에 지함이 고통스러운 듯 급히 얼굴을 감쌌다. 자신의 말 실수를 고치기 위한 나름대로의 노력을 하며, 제 입에서 한 마디 한 마디를 또박또박 꺼냈다.

파, 판관 나리께서는 아무래도, 입이 너무 험하십니다. 나리를 본받고자 하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데…."

눈물만 흘리지 않을 뿐이지 지함은 완전히 울상을 짓고 있었다. 그걸 지켜보고 있던 이수는 어이가 없는 듯 헛웃음만 내뱉다가 손을 휘저었다.

"후. 일단은 다들 조용히 하고, 서 권지를 제외하고는 최대한 빨리 뒷걸음질로 걸어나갔으면 좋겠네만."

"예? 뒷걸음질이라니 그 무슨…."

"조용하라니까."

뚱한 표정으로 내보여진 지함의 불만 섞인 말은 결국 이수에 의해 끊어져 버렸다. 도을과 지함, 그리고 효민은 투덜대며 빠져나갔고, 진수는 그 뒤를 조용히 따랐다. 이수의 말대로 뒷걸음질치며 나가지 않았음에도 그는 결국 아무런 질책도 하지 않았고, 멍하니 뒷모습만 바라보고 있었다.

"저, 그래서 왜 저만 따로 남으라고 하신 겁니까?"

혼자 남은 윤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 그랬지. 일단은 이쪽에 와서, 이걸 가져가게."

윤구가 머뭇거리며 이수 옆으로 오는 동안, 이수는 제 책상 옆에 가지런히 정리된 몇 개의 두루마리를 내어놓았다.


*


"사실 전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넷은 적당한 크기의 빈 방 안으로 들어가, 방금 전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때까지 안쪽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던 진수가 가만히 손을 들고는 입을 열었다. 그 말에 지함이 반사적으로 반응했다. 조금 전 이수에게 크게 데였던 탓인 듯했다.

"우리 숙부님, 아니 그, 그러니까 판관 나으리 말하는 겐가? 오늘따라 그렇지? 기분이 안 좋으셨던 건가…."

"아니, 그게 아니고…."

진수가 고개를 저었다. 말을 잇기 주저하는 표정이었다.

"그래."

도을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진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한 마디 덧붙였다.

"그보다 허안이는 무슨 명분으로 거기 남았던 거래."

그 말을 들은 진수의 뺨이 붉어졌다. 그걸 눈치챈 도을은 혀를 쯧쯧 차며 진수를 놀리기 시작했다.

"아이고. 아까 그 말 하려고 했구만. 저런. 이해하네. 그럴 만하지."

"…예."

그러나 지함은 그게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아니, 그게 명분이랄 게 뭐 있습니까. 그냥 그 자리에서 보이는 사람 한 명 찍은 거겠지요. 게다가 생각해 보면 저희 다섯 중 생도 시절 가장 일등을 많이 해 본 녀석 아닙니까?"

"…."

지함을 제외한 나머지 셋은 그 말을 영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결국 도을이 겨우 입을 열었다.

"자네 판관 나으리 성격 모르는가? 아니다, 모를 리가 없겠지. 근데…."

"그러니까 제 말은! 숙부님 하시는 행동 하나하나에 그렇게 의미가 있나 하면 그것도 아니라는 겁니다! 누가 보더라도 딱 보자마자 제일 눈에 띄는 건 허안일 텐데."

지함이 도을의 말을 가로막으며 소리질렀다. 물론 큰 소리라고 해도 평소의 그에 비교해서일 뿐이라, 아무도 그걸로 무어라 하지는 않았지만, 그보다는 이런 반응이 압도적이었다.

"…오, 지금 자네. 올해 들어서 처음으로 본인 의견을 낸 겐가?"

여태까지는 이 대화에 관심조차 없어 보이던 효민이 지함을 놀렸다. 지함은 거기에 결국 못 이기겠다며 책상 위로 쓰러지듯 엎드렸다.

"아…."

"…잘못했습니다."

진수가 이어 책상에다 머리를 박았다. 정확히는 관모 끄트머리였지만. 도을이 지함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냐, 이놈 빼고는 다들 해 본 생각일 터이니. 지금쯤 허안도 찜찜할걸."

"저어는 아아무 생각 어없었습니다아."

효민이 기지개를 켜며 뒤로 몸을 쭉 뺐다. 도을은 열심히 진수를 위로하려 했지만, 나머지 이들의 극적인 무관심과 반대 의견으로 기가 쏙 빠져 제대로 되지 않았다. 넷은 결국 이 주제로 이야기를 아무리 오래 해 봤자 아무 승산 없다고 결론 내리고는, 곧장 다른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앞으로 있을 일들. 지옥같을 면신례. 생도 시절에 담장 너머 들었던 선배 관원들의 이야기. 좀더 전문적인 이야기들. 아, 허안이 제일 열심히 했고, 제일 잘 했지. 여기 있었으면 좋았을 걸.

"…결국 돌아오잖나!"

여러 번 말을 돌려 봐도 결국 제자리였다. 다들 끝내는 아예 말을 꺼내지 않기로 암묵적으로 합의하고, 윤구가 도착할 때까지 눈알만을 열심히 굴리며 멍하니 앉아 있었다.

"…."


*


"하아."

이 시각 윤구는 곱게 정리된 문서 몇 개를 들고 나머지 동기 넷을 찾고 있었다. 그 표정은 굳이 말하자면 안 좋은 쪽이었고, 팔과 다리는 후들후들 떨리고 있었다.

'왜 하필 저더러 이런 일을 하라고 하신 겁니까. 판관 나으리.'

문서는 평범했다. 각 신래 관원들이 배치된 자리와 그 직속 상관이 적혀 있는 것 뿐이었다. 그것은 일상적이고, 입격자의 인원과 등수가 매번 정해져 있다는 점에서 매우 관례적이고, 고정적이었다. 매우 단순한 단 하나의 규칙.

'올해 2등이라면, 3년 전 2등이었던 자의 아래로 그대로 들어간다. 항상 그랬다고 했지.'

그러므로, 이미 모두들 자기가 어느 곳에 배정될지 대충은 알고 있어서, 어떤 경우는 이미 상관이 될 분께 인사드리고 이야기까지 나누었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왜.'

무언가가 바뀌어 있었다. 자기 이름이 있어야 할 자리에 다른 이의 이름이 올라와 있는 것을 보았으며,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확인까지 받았다. 그 주체가 판관 유이수라 하니, 오류일 가능성은 없다시피했다.

'이미 각오해 두었는데.'

거기엔 다름아닌 진수의 이름이 올라와 있었던 것이다. 생도 시절 성적이 합격점에 영향을 주었을 리도 없었다. 그랬으면 이도을은 순위에도 들지 못했을 것이 자명하기에. 대체 그애가 뭘 잘못했기에 2등인 자신과 바꿔치기당한 거냐며, 아니 그 이상의 다른 이유로 그는 나름대로 분개하고 있었다.

'왜 경호를 하필 그 사람에게 배치한 거냔 말입니다.'


*


그는 책상 앞에 앉아 상 위에 지저분하게 늘어져 있는 종이들 위에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적어 내려가고 있었다. 그가 있는 곳은 삼력청(三曆廳)이라고 하는 여섯 칸으로 이루어진 커다란 건물 안쪽이었는데, 원래대로라면 서른 명 정도의 삼력관들이 분주하게 근무하고 있어야 할 곳이었다.

"…."

그러나 그는 그 큰 방 안에 혼자였고, 이 정도의 조용함에 이미 충분히 익숙해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 부자연스러운 분위기에 한 가닥만큼의 어색함도 느끼지 않고, 이상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었다.

"…이거, 오늘 분량 겨우 맞추겠는데."

그가 중얼거리는 것들 중 타인이 알아들을 만한 것은, 숫자 몇 개를 제외하면 이런 말들 뿐이다.
써내려가는 글자의 모양 역시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비틀어져 있었다.

-덜컹.

한참을 그렇게 시간과 씨름하고 있을 때쯤, 어디선가 문이 흔들리는 소리가 들렸다.

"뭐, 뭐야. 벌써 시간이 그리 되었다고?"

그는 침착하게 책상 위와 그 주변을,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의관을 주섬주섬 정리하기 시작했다.

"뭔가, 오늘따라 문 여시는 게 느리네."

다른 궐내각사 건물들과 비슷하게, 삼력청 건물 역시 건국 이래로 함께 나이를 먹은 건물이었던데다, 매년 많은 이들이 드나드는 곳이었다. 따라서 문 여는 법을 알고 있는 몇몇 사람을 제외한 사람, 특히 처음 보는 사람이 여는 경우에는 마치 잠겨져 있는 것만 같이 열릴 듯 말 듯 덜컹거릴 뿐이었다. 그러니까, 지금처럼….

"어…?"

그는 그제서야 마침내 안심했다. 정리를 멈춘 손은 그대로 굳어 있었지만, 적어도 방금 전보다는 어느 정도 긴장이 덜 한 표정으로 문 쪽을 응시할 수 있었다. 저 밖에 있는 사람은 아마도 자기와는 아무 관계없는, 자신이 처음 보는 사람일 것이다.

``그러면 내가 뭘 하든 신경쓰지도 않겠지."

그렇게 작게 속삭이며 그는 종이를 다시 폈다. 다시 무언가를 적어내려가려 하던 찰나, 밖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저, 여기 김 권지 나리 계십니까?"

완전히 처음 듣는 목소리. 그러나 아마도 자신을 부르고 있었다. 신경 쓰일 일 없다고 생각했다만, 초면이라면 안심이라고 생각했던 그는 갑자기 숨이 턱 막혀 왔다. 문 밖에 있을 상대의 이름도 나이도 직급도, 자신과의 관계도 몰라 어떻게 대답을 할지 모르는 상태였기 때문에. 그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조차 모른 채 다음과 같이 얼버무렸다.

"…그거, 저이긴 한데, 여기 김씨 성을 가진 권지가 한둘이겠습니까."

"헌데 여기는 삼력청이잖습니까…? 여기 계시는 김 권지 나리라고 하면 한 분밖에 안 계신다고…"

때맞춰, 그렇게 열리지 않은 채 삐걱거리던 삼력청 문이 단숨에 열려 버렸다.

'이런, 큰일 났다.'

그는 짐을 챙겨 문 반대편 구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해봤자 별 의미가 없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순간적인 두려움과 긴장감이 몰려온 탓에 반사적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는 사이 목소리는 형체를 가지고 삼력청 안으로 걸어들어왔다. 당연하지만 처음 보는 관원이었다. 그리고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는, 다 구겨져 버린 종이쪼가리를 손에다 얹어 주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김 권지 나리 직속으로 배치된, 이진수라고 합니다."

"…네, 네에…?"

"…? 말씀 편하게 하셔도 됩니다."

진수가 한껏 어색해져서는 말했다.

"그, 그래. 알겠네…"


*


서윤구가 판관 유이수와 독대했던 것은 그 때로부터 한 식경 정도 전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자넨 누구한테 배정되었을 거라고 생각하나?"

이수가 의미심장한 물음을 건넸다.

"그거야 당연히 지난 식년시 2위였던…."

윤구가 답했다. 그러나 이수는 거기까지만 듣고 고개를 저었다.

그는 두루마리 몇 개를 가져오더니, 골치가 아픈 듯 그것들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맨 아래에 있는 두루마리 한 권을 꺼내 확인한 후 윤구에게 건넸다.

"…자네도 눈이 있긴 있을 테니. 직접 읽어 보게."

"…."

윤구는 두루마리를 받았을 뿐, 그 자리에서 뻣뻣하게 굳어 버려 두루마리를 펴서 내용을 읽을 수 없었다. 이수가 혀를 차며 그런 그를 바라보았다. 이수 역시 거기 써 있는 글들을 한 번 확인한 이후 아예 읽지 않으려 했음에도 불구하고.

"혹시 내가 심한 소리를 했나?"

이수에게 보이지 않게끔 한쪽 눈썹을 살짝 찡그리면서, 윤구는 그제서야 손에 든 두루마리를 펴서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이수는 그것을 보곤 한숨을 쉬며 윤구 쪽으로 다가가서 그의 어깨를 톡톡 두들겼다.

"읽어 보면 알겠지만, 내가 이걸 말로 전달해야겠는가? 싶은 것들이어서. 천천히 읽고 생각이란 걸 좀 해 보게. 나는 앉아 있을 터이니."

이리 말하며 태연히 자리로 돌아가는 이수였다.

"저, 판관 나으리."

애써 문서를 응시하던 윤구는, 잠깐의 적막을 깨며 이수를 불렀다.

"제가 왜 원 관원 직속으로 들어갑니까…?"

윤구가 초점 없는 눈으로 낮게 중얼거렸다. 이수는 올 게 왔다는 표정으로 윤구를 향해 슬쩍 엷은 미소를 지어 주었다.

"글쎄, 나는 모르는 일이지. 내가 그렇게 배정했겠는가."

"…."

"헌데 그게 맞다네. 나도 처음엔 잘못된 줄 알았는데 말이야."

이수는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잘못된 건 그 두루마리 뭉치가 아니고 내 생각이었던 게지."

윤구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떨구었다. 그가 알고 있는 이수는 이런 말을 하실 분이 아니었다. 게다가 문서에 적혀 있는 것과 같은 배치표를 보고 확인 도장을 순순히 찍어 줄 사람도 아니었다. 나이 마흔도 안 되신 분이니, 저렇게 세상에 통달한 듯한 말을 할 사람은 더더욱 아니고 말이다.

'아무튼, 문제는 우리 경호인데. 이걸 어찌 말하나.'

직속 상관 배정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진수도 알고 있을 터. 다만 그는 그렇게 사람 얼굴 외우는 것에 밝지 않고 인맥이 넓지 못해 누가 누구에게 배치될지는 알지 못한다. 차라리 그가 놀라지 않게, 그리고 아무도 신경 쓰지 않게, 이 문서를 직접 전해 주는 것은 피하자. 지금 당장은 다른 셋에게도 둘의 자리가 바뀌었다는 것을 알리지 말자. 오랫동안 생각에 열중하던 윤구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지필묵을 잠시 빌려도 되겠습니까?"


*


정확히 한 식경 후의 삼력청. 진수와 김 권지가 나란히 서로 다른 상에 앉아 각자 할 일을 하고 있다. 어느 한 쪽도 먼저 말을 붙일 만한 용기가 있는 성정을 지니지 않은 듯 했으니, 둘은 굉장히 어색해 보였다.

"…저, 혹시 성함이 어찌 되시는지 여쭈어도 됩니까."

진수가 먼저 물었다. 여태까지 서로 통성명조차 안 한 사이였다는 건, 정말로 한 마디도 나누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할 터.

"뭐야, 알고 있는 것 아니었나?"

그 물음에 진수가 김 권지를 돌아보며, 그의 손에 넘겨준 쪽지를 가리켰다.

"그거 읽어 보십시오."

쪽지의 내용은 이러했다.


'삼력청에서 김 권지를 찾게. 아마 평소에도 내내 거기 있을 터. - 허안'


"으, 내가 항시 여기 있어야 하는 줄은 어찌 알고. 딱 이렇게만 전달받았나?"

진수가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김유한이라고 하네. 적을 때는 오직 유에 한가할 한(唯閑). 아마 이렇게 말하면 날 아는 사람들은 다 알아들을 거야."

"…예."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물론 진수 본인이 사람들 이름 외우는 것에 서툴러서일지도 모르겠지만, 오며 가며 들어 본 관원들의 이름 중 그런 이름은 없었다. 알 수 없는 불안감이 그를 감쌌다.

"아, 그리고."

유한이 종이 가장자리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진수는 한껏 긴장된 상태로 유한에게 귀를 기울였다.

"내가 하는…. 일이 좀 고되네. 먼저 사과해야 할 것 같아서…."

"…하아…."

진수가 한숨을 쉬었다.

"그건 괜찮습니다. 뭐 모르고 온 것도 아니고."

그가 듣고 싶었던 것은 일이 고되냐 마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물론 그것도 상당히 중요하긴 하지만, 삼력관씩이나 되어야 겨우 드나들 수 있는 이 커다란 건물에 아무것도 아닌 권지와 신래 봉사 단둘이 어색하게 앉아 있는 이 장면이 아무것도 모를 진수에게도 퍽이나 이상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여긴 대체 왜 이리도 조용해진 겁니까? 원래는 굉장히 분주한 곳이라고 들었습니다."

"아, 그거야 뭐."

유한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투로 대답했다. 그리고 첨언했다.

"좀 있으면 다들 들어올 것이니 걱정 말게."

유한의 말에 진수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은 초봄, 2월 초였다. 일과력의 역 계산이 늦어도 4월 전까지 마감되어야 한다는 건 진수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리도 바쁠 시기에, 한두 명도 아니고 삼력관 열두 명이 한 번에 자리를 비운다는 점은 이상했다. 이 열두 명 중엔 당상은 물론이요, 관직 이름부터 \textsf{삼력청공사원}인 정사영도 있었다. 게다가 교수 방정식마저 여기에 속했다. 아는 사람은 많이 없었으나, 삼력관들의 얼굴을 곱씹어볼수록 그들은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겁니까?"

그들은 이런 식으로 사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유한에게 물어 봤자 그는 모른다는 듯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그러나 조금 후 진수의 눈앞에 비친 풍경은, 이제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다음 순간 문을 열고 들어온 이들은 당상과 겸교수 및 교수를 제외한 삼력관 일곱 명이었다. 너무도 부자연스런 광경에 진수는 입을 다물지 못하고 그쪽을 쳐다보았다.

"어휴. 지금 혼나려고 작정을 했구만…."

유한이 그걸 보며 이렇게 혼잣말을 하더니, 진수를 끌어다가 이미 좀 전에 눈치껏 잡아 둔 자기 자리인 맨 구석 바로 옆자리로 옮겨다 놓았다.

"후우, 피곤하다…."

"하하, 그래도 요즘 결과물을 보면, 올해 안에는 끝낼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않은가?"

"아, 예! 그럴 겁니다!"

왁자지껄한 소리 가운데 들리는 대답 소리가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어 진수는 고개를 돌렸다. 생각보다 그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거기엔 다름 아닌 윤구가 서 있던 것이다.

"아…."

"허, 허안 형님. 여긴 어떻게…."

방 구석에 바짝 붙어 있는 유한의 옆에 쭈뼛하게 앉아 있는 진수를 알아본 윤구는 진수 쪽으로 다가와 팔목을 힘껏 붙잡고 끌어당겼다. 그리고는 귓바퀴에 대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나중에, 나중에 얘기하세."

"아…, 알겠습니다…."

이후 윤구는 한참 대화를 나누던 제 상관에게로 가서 일을 마저 배우는 데에 열중하였다.

"…우아…."

진수가 멍한 표정으로 그쪽을 보며 작게 탄성을 질렀다. 그의 눈 앞에 있는 이들은 제 분야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일을 하는 삼력관들이었다. 물론 이런 경우가 흔히 있는 것은 아니었다. 특이한 것은 서윤구가 아닌 그의 상관 쪽이었다. 3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실직(實職)에 오르기는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따지자면 서윤구는 그 덕택을 보고 있었을 뿐.

그러나,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자기 옆에 있던 서윤구는, 그 옆에 딱 붙어서 그들의 일을 돕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어디인가.
반면 자신의 직속 상관이란 분은….

"…뭔가."

"아닙니다."

진수가 유한 쪽을 돌아보니, 유한은 눈에 띄게 쭈뼛대고 있었다. 각을 잡고 몸을 떨며 긴장한 모습으로 앉아 있는 것을 보면, 어쩌면 진수 자신보다 못 해 보일지도….

그리고는 겨우 입을 열었다.

"뭐야. 자네도 일 알려 줘? 뭐 하면 되는지?"

아, 그랬다.

'일이 고되다고 하셨지….'

잔뜩 긴장한 순간, 그런 둘의 대화를 막는 다른 이들의 말소리가 들려 왔다.

"여, 김 권지, 창고 가서 종이 좀 가져와 보게. 오는 김에 마당도 좀 쓸어 놓고."

'예?'

이 말을 듣는 동안 진수는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일이 고되다는 말을 들었어도, 전혀 예측할 수 없었던 상황이기 때문에. 잡일이라니. 잡일이라고? 과거도 거친 사람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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