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貳_望

서운관측후일지

"하."

같은 시각. 삼력관 원구연은 짧은 한숨과 함께 어이없다는 듯 윤구가 끌려갔던 곳을 바라보았다. 그는 한 달 전부터 상관으로서 서윤구를 지켜보았던 바 있다. 2등이란 성적으로 제 아래에 배치되었다면, 서윤구나 김유한이 생각보다 유능한 걸까, 이진수라는 자가 무능한 걸까 아니면 자기 자신이 무능해진 걸까. 처음에는 그리 생각하며 이 인사를 언짢아했던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다행히도 윤구는 생도 시절 연이은 1등을 차지했었던 아이였던데다 성격도 좋아서인지 구연에게 있어 다루기도 쉽고 성실하며, 일 처리도 빠르고 정확한 관원이었다. 그러니 이 정도로 일을 크게 그르칠 사람이 아니었다.

하룻밤 동안 적어내려갔던 일지를 당상관들의 손에 넘긴 아침, 권지 서윤구의 표정은 처참했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윤구는 그 종이조각을 읽고 돌아온 당상관 및 판관 유이수에 의해 무력하게 감옥으로 끌려갔다.

구연은 전날의 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

"서 권지, 입직은 이번이 처음이던가?"

"예."

구연이 기억하기론, 그 때부터 이미 윤구는 조금 불안한 기색을 보이고 있었다. 단순히 혼자 일하는 것이 처음이기 때문에,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긴장감이라 생각한 구연은 별 생각 없이 상투적인 위로의 말을 던졌다.

"내 지난 한 달 간 보기에, 자넨 별 문제 없이 일들을 끝마쳤네. 분명 오늘 밤도 아무 일 없이 넘어갈 것이라 생각하네."

그것이 혼자 칠흑같은 어둠에 내던져지는 것에 대한 극도의 불안감이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원구연은 서윤구의 상태에 너무나도 무심한 나머지 절대 해서는 안 될 한 마디를 해 버렸다.

"하하, 다들 거쳐 가는 일인데, 설마 무슨 일이라도 있으려고."

구연은 위축되어 있는 윤구의 어깨를 두어 번 토닥여 주었다.

"정말 무슨 일이 있거든, 나를 부르게. 숙직실(天文直廬) 맨 끝 방에서 기다릴 테니."

이제 와서 되짚어보니, 그 때의 윤구는 조금도 안정된 표정이 아니었던 것만 같았다.

*

문 밖에서 괜히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왔다. 등청 시간이 가까워진 게지. 평소대로의 관상감이어서 구연은 거기에 그리 마음 쓰지는 않았다. 등청 시간까지 아직 반 시진이나 남았다는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급한 마음을 안고 문 안쪽으로 뛰어들어오는 관원들이 있다는 것과, 그들이 평소 윤구와 함께 다니던 이들이라는 것을 깨닫기 전까지는.

"허안이! 어딨나!"

"하, 석주 형님도 참. 허안이는 여기 없을 겁니다. 분명 하옥당했다고 하셨잖습니까."

"앗, 그럼 판관 나으리를 찾아가는 게 어떻습니까아? 분명 그 분께 부탁드리며언…."

"수, 숙부님만은 안되네! 나는 빼 주게!"

원구연은 언짢은 표정으로 그 넷을 지켜보았다. 서윤구는 그리도 초췌한 표정을 하고서 감옥까지 끌려갔는데, 그와 가장 친하다는 이들의 표정은 분명 묘하게 상기되어 있었다. 제 밑에 들어올 뻔했다는 이진수라는 녀석만 제외하고선. 구연은 네 관원들이 제 옆을 스쳐지나갈 때쯤, 단호한 표정으로 말을 걸었다.

"이보게."

"어, 소호 아닌가!"

도을이 반가운 듯 달려나가 구연의 팔을 잡고는 거칠게 악수를 했다. 구연은 당황한 듯 그 손을 뿌리쳤다.

"제가 부른 건 저 녀석입니다. 안 그래도, 판관 나리께 가려고 동행할 자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러곤 혼자 멀찌감치 떨어져서는 지함의 등 뒤에 숨어들어가 있는 진수를 가리켰다.

"엇, 뭐야. 경호? 저놈은 말주변이 없어서 별로 도움 안 될 텐데."

진수가 놀라서 지함에게 더 가까이 붙었다. 도을은 그런 진수를 보며 혀를 몇 번 차더니 다시금 구연을 쳐다봤다.

"그냥 우리 다 데려가는 게 어떤가?"

"그럼 판관 나으리께서 정말로 좋아하시겠습니다. 딱 둘만 가는 게 낫습니다."

도을에게 구연을 이길 방법은 없었다. 3년 전, 같은 생도 처지에, 거의 대부분의 지식을 구연과 공유하고 있었음에도 현재와 같은 차이가 벌어졌다는 것이 이를 증명해 주고 있었다. 더 이상 말을 붙여 봤자 기대하는 결과는 낼 수 없었다. 정말 진수를 붙여서 보내더라도, 그런 원구연이 있으면 안심할 수 있긴 했다. 다만 왜 구연이 이진수를 골랐을까.

"휴, 소호 마음대로 하게. 하지만 왜 경호 저 아인지는 좀 듣고 가고 싶은데."

도을은 알아채지 못했으나, 도을이 한 마디 한 마디를 꺼낼 때마다 구연의 표정이 점점 구겨져 들어가고 있었다.

"송구합니다만 여긴 관청 안이고, 이 권지께서도 신래 관원이시니, 저를 하대하시는 건…."

도을이 구연의 말을 적당히 막았다.

"알겠네 알겠네. 결국 자네도 판관 나으리 같은 사람이었단 게지."

"그러니까 그 말투를 어떻게 좀…."

구연의 부탁이 있었지만, 도을은 고개를 슬쩍 옆으로 돌려 씁쓸한 미소를 짓고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기에, 구연은 더 이상 별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보다 더 중대한 일이 있기도 했다.

"이 봉사는, 이 상황에서 서 권지를 걱정해 주는 그나마 유일한 사람으로 보여 데려가는 겁니다. 서 권지는 지금 꽤나 심각한 상황일 거라고 생각됩니다. 이런 일에 재미있는 듯 히히덕거리며 뛰어들어오는 자네들 같은 자들이 신경쓸 일이 아니야."

구연은 유지함과 김효민 쪽을 한 번 돌아보며 무섭게 꾸짖었다. 그리고는 진수의 팔목을 잡고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나머지 셋은 구연에게 내쳐진 채로 이전과 같이 방 한 구석에 자리잡았다.

*

"완전히 맹호입니다 그 분은요오. 소호가 아니라아…. 누가 그 분을 작은 호랑이라고 생각하겠습니까아?"

효민이 도을을 바라보면서 방금의 말이 자기 이야기인 걸 좀 깨닫기라도 하라는 듯 말했다. 구연의 호를 그대로 풀면 작은 호랑이. 도을이 보는 원구연은 딱 그 정도였다. 그리 알고 덤비는 것이었다. 

"내가 일전에 말했지 않은가. 거 소호 녀석이랑, 허안이랑 경호 셋이 붙어다니는 것 같았던 게 좀 낌새가 이상했었다고."

그러나 도을은 효민의 말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볼 한가득 공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상황이 안 좋은 걸 누가 모르나. 그런데 우리가 인상 구기고 앉아 있어 봤자 바뀌는 게 뭐가 있어. 오히려 경호 저녀석이 겉으로는 진지해 보여도 정작 판관 나리 앞에 가서 도움이 될 리가 없을 텐데."

"솔직히, 어디로 튈지 모르긴 합니다. 허나, 그래서 더 알맞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지함이었다. 판관 유이수의 조카. 이수에 대해 알 건 다 아는 자였다. 본인은 1할도 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긴 했지만, 다른 이들은 오죽하겠는가. 지함에 의하면, 이수에게 그 표정을 보이는 것만으로도, 아니 어떤 인물이 그의 시야에 들어오는지 보는 것 만으로도 그는 이미 모든 것을 꿰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진수는 반대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겉에서 잘 티가 나지 않는데다, 평소에는 조용하다가도 예상할 수 없는 일을 벌이는 아이라, 완전히 상극이라는 것이다.

"한 마디로, 숙부님을 상대하기엔 나름대로 적당한 패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잠깐, 그 말은 분명 맞는 말이긴 하네만."

도을은 여전히 납득하지 못한 채 지함을 나무랐다.

"소호 놈이 그걸 어찌 알지? 조카인 자네나 알고 있는 걸."

이에 효민이 관모 아래로 슬쩍 삐져 나온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나직한 목소리로 답했다.

"저, 뭐라 하지. 너무 상처받지 말고 들으십시오오. 백연이 아는 거면, 모두가 압니다아."

"아, 말도 안 되네! 내가 그렇게 눈치가 없다는 건가?"

도을과 지함이 동시에 외쳤다. 효민은 그제야 만족한 듯 웃음을 지었다.

"앗, 오늘은 좀 있으시네요오들."

"그래서. 자꾸 딴 길로 새는 건 그만둡시다. 허안이 일은 어찌하실 겁니까?"

점점 본연의 목적을 잃어 가는 이들의 모임에서, 그나마 그 모임의 의도를 잊지 않고 상기시켜 주는 역할을 하는 건 지함이었다. 이번 일엔 목숨까진 걸려 있지 않더라도, 앞으로의 관직생활까지는 걸려 있을지도 모를 중대사이기도 했으니. 도을이 머뭇거리며 겨우 입을 열었다.

"별 수 있나. 기다려야지 뭐."

지금 판관 유이수가 있는 곳으로 무턱대고 들어갔다간, 상황만 악화될 것이다.

"경호 그녀석의 운을 믿어야겠구만."

*

진수는 구연의 뒤를 따라 말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진수의 시점에서 원구연이라는 사람은 면신례 때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고는 하나, 윤구가 일러 준 것을 그저 앵무새처럼 따라 말했을 뿐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눈 적은 전혀 없어 친밀하다고는 볼 수 없는 관계였다. 그러니 더더욱 지금의 그에게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를 애매한 관계.

불편한 심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더듬더듬 걷고 있을 때 구연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한숨 섞인 말을 건넸다.

"…서 권지가 많이 걱정되는가."

"물론 걱정됩니다. 그분이 어떤 상황인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으니까요."

평소보다도 더 맥 빠진 목소리로 진수는 답했다.

"그…. 혹시 이 일에 대해 아시는 것 있습니까."

"모르네. 정확히 서 권지가 뭘 실수했는지도 듣지 못했어. 그래도 처음이니, 어느 정도 감안해서 형량이 결정될 걸세."

"형량이요?"

진수가 놀란 듯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워낙 흰자위가 넓은 눈을 한 녀석이라 그리 티가 나지는 않았지만, 이제는 조금씩 그 미세한 표정 변화를 눈치채는 단계에 접어들고 있었다. 진수에게 윤구의 이번 일은, 잠깐 옥에 갇혀 있다가 풀려나거나, 대신 돈을 내거나 하는 것으로 끝날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생긴 거랑은 다르게, 세상 돌아가는 것에 상당히 무지하구만.'

구연이 진수의 물음을 무시하고는 청사 안쪽으로 향하는 문턱을 밟았다.

"…일단, 들어가서 판관 나으리와 마저 이야기하세."

구연이 문을 열고 들어가자, 거기에는 판관 유이수를 비롯해, 정식을 포함한 참상관 몇, 수는 적지만 당상관 몇이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가운데의 책상 위에는 서윤구의 것으로 추정되는 일지가 놓여 있었다. 이런 장면을 처음 보는 진수는 물론이고, 구연마저 그 앞에서 뻣뻣하게 멈추어 섰다.

"지금 상황이 어떤지 모르는가. 자네들이 들어올 곳은 아닌 것 같은데."

당상관 중 하나가 소리쳤다. 진수와 구연이 납작하게 고개를 숙였다.

"됐습니다. 나무라지는 마십시오. 이 일 때문에 찾아온 것이 맞는지도 불분명하고요."

판관 이수였다. 이 상황, 이 시점에 이수의 그런 반응은 상당히 의외였다. 지금 일은 상당히 중대사로, 평소의 그였더라면 둘은 찾아온 이유가 어쨌든 상관 없이 바로 내쳐졌을 것이다. 말로는 서윤구의 일 때문에 찾아온 것이 아닐 수도 있다고 하나, 그는 이미 자신들의 의도를 눈치챘을 것이라고 구연은 추측했다.

"일단 둘은 나가 있게. 위에서 이야기를 마치면 부를 테니."

이수의 다음 말이 그것을 증명했다.

'저희가 서 권지 일 때문에 온 게 아니라고 생각하셨으면, 위에서 이야기를 마치면 같은 식으로는 말씀하지 않으셨어야 할 것 아닙니까.'

구연은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게 눈썹을 살짝 찡그려 보이고는, 이내 이수에게 목례를 한 뒤 진수를 데리고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판관 나으리 상태도 정상이 아니구만.'

"허안 형님께서는….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방을 나서자마자 진수가 낮게 중얼거렸다. 물음의 형태로 끝나기는 했지만, 답할 여유를 내어주지 않은 진수의 혼잣말이었다. 청사를 나서자마자, 진수는 난생 처음 맞이했을 두려움에 돌계단 위에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구연을 올려다보았다.

"그 종이, 분명 허안 형님께서 쓰신 거…."

"맞을 걸세."

구연이 한숨을 쉬었다. 둘은 겨우 불안을 가라앉혔다. 그렇다고 안정된 건 아니었지만, 제정신으로 말을 이어갈 정도까지는 되었다.

"어르신께서는, 허안 형님 필체를 잘 아십니까?"

"알지."

서윤구는 몇 년 넘게 서로 알아 온 사이인데다, 최근 한 달 정도는 계속 옆에 붙어서 함께 일해 온 녀석이다. 필체 정도도 모를 리가 없지.

"방금 그건…."

"뭘 생각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방금 그건 서 권지 것이 맞네."

구연이 진수의 말을 필사적으로 막으려고 했다. 분명 이 녀석도 충격을 받아 정상이 아니게 된 걸 거라고 구연은 생각했다.

"그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불행 중 다행인가. 조작이 아니라는 걸, 진수도 알고는 있었다.

"그런데 그 글자들, 이상할 정도로 획이 떨리고 있었단 말입니다."

"그랬었나."

구연은 거기에 있던 당상관들과 참상관들의 표정을 읽느라 가운데 있던 종이는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러고 보면 그는 전날 윤구의 표정도 제대로 읽지 못했다. 구연은 잠시 고개를 떨구고 생각하다가 진수 쪽을 돌아보았다.

"아까 나한테 뭐 아는 거 없냐고 물었지."

"…."

"그 말은 내가 자네한테 해야 할 것 같네. 뭐 아는 거 없나."

진수는 고개를 저었다.

"저도 모릅니다. 그런 형님을 보는 건 처음입니다."

둘은 손으로 얼굴을 감싸쥔 채로, 마음 속으로 자신들이 윤구의 속내에 대해 계속해서 무관심으로 일관했음을 자책했다.

"역시, 아직도 여기 있었구만. 근데 둘 다 뭐 하나? 고개 푹 숙이고는."

이야기를 마치고 밖으로 나온 유이수가 친절하게 그들을 맞아 주기 전까지 그들은 쭉 그러고 있었다. 구연이 얼른 일어나서는 꾸벅 허리를 숙였다.

"됐네. 그럴 필요 없고. 들어오게. 서 권지 일로 온 거 맞지?"

이수는 구연과 진수를 데리고 청사 안에 들어와 둘을 제 앞에 앉혔다. 그리고는 그렇게 궁금해하고 있는 일지의 내용에 대해 이야기했다. 

전날 밤은 매우 맑은 편이었다. 그 시기 즈음의 흐릿한 날씨가 아니었다. 진수가 그 날 아침 일어나면서 이상할 정도로 상쾌함을 느낀 건 서지원의 덕택이기도 했지만 유독 그 밤이 청명했기 때문인 것도 있었다. 그러나 일지에는 급박하고 떨리는 획으로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안개와 구름이 많아 앞을 분간할 수 없음.>

*

구연이 대표로 이수에게 의견을 전달했다. 구연은 진수와 자신이 이제껏 본 것들, 보지 못하고 지나쳤다가 나중에 가서야 알게 된 것들을 덤덤한 표정으로 설명했다. 요는 결국 직속 상관으로서 윤구의 속내를 파악하지 못한 자신이 잘못했으니, 이번 한 차례만은 대신 벌을 받거나 나누어 받게 해 달라는 거였다. 굉장히 기특한 발언이었으나 그 말을 듣는 이수의 표정은 오히려 어두워지고 있었다.

"거기까지만 하게. 못 들은 걸로 할 테니."

못 들은 걸로 하겠다. 이수가 웬만해서는 쓰지 않는 말이었다. 있는 사실을 두고 방관하는 것은 그의 성정으로는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이 말이 그의 본심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님은 뒤에서 멍하니 보고 있던 진수도 눈치챈 것이었다.

"이 봉사?"

이수는 한 마디도 않고 서 있던 진수에게 느닷없는 질문을 던졌다.

"만약, 만약에 말이네. 내가 옳다고 믿는 두 가지가 충돌한다면,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게 낫겠지?"

이 말을 하는 이수의 얼굴 근육들이 떨렸다. 진수는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그렇구만. 둘 다 내가 왜 이러는지 잘 모르는 게지."

"예."

구연은 팔꿈치로 이수의 말에 가볍게 대답하고 있는 진수를 툭 하고 찔렀다.

"왜 그러나. 뭐 솔직하고 좋구만."

비슷한 상황이었는데, 이수의 반응은 한 달 전과는 정반대였다.

"삼력관 원구연이라."

"예?"

"요즘 뭐 하나?"

구연은 여전히 당황한 채로 진수 쪽을 돌아보며 눈치를 살폈다.

"저, 그건 저 녀석이 있는 데서는 답할 수 없는…."

"그래, 보안 사항이라 이거지. 그런데, 내가 모르고 물었을 것 같나?"

진수가 속내를 알 수 없는 표정을 하고선 끼어들었다.

"그 말은."

"여기 돌아가는 상황이 그리 떳떳하지는 못하다는 게지."

이수는 그리 말하고는 입꼬리를 천천히 올리면서 진수 쪽을 바라보았다.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쳐다보는 진수가 꽤 마음에 든다는 눈치였다.

"다들 알다시피 판관은 체아직이지. 6개월이면 갈아치워져."

유이수에게는 그 직함이 꽤 적성에 맞았던 건지, 상당히 오랜 기간 판관으로서 근무했던 것처럼 보였긴 했지만, 사실 그가 판관으로 근무한 날수는 진수가 유한 밑에서 근무한 날수와 비슷한 정도였다. 게다가 앞으로 남은 건 5개월 정도에 불과했다.

"…."

둘은 말을 잇지 못하고 이수를 바라보았다.

"내 목적은 그 6개월 안에 그 상황을 바로잡는 거였네. 하지만 첫 단추부터 이상하더라고."

권지 김유한, 그가 들어오면서 이 곳의 제도는 점점 어긋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그의 탓을 하기엔, 그는 가장 명백한 피해자였다. 그를 데려온 것은 정식이었다. 그러나 정식이 한 일은 유한이 뛰어난 인재라고 소개했던 것 뿐이었다. 어떤 사람을 콕 집어서, 그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었다. 겉에서 보면 희생자는 한 명 뿐이고, 모든 것이 잘 굴러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수는 그 한 명의 희생자도 그냥 지나칠 수 없었으며, 한 명의 희생자로 인해 망가지고 있는 제도 역시 지나칠 수 없었다.

이수는 당시 생도들을 지켜보았다. 그 때만 해도 이수는 판관이 아니라, 추길관(명과학 분야의 실직) 중 한 명이었지만, 스스로 관상감 내에서의 기반은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애초에 다음 번 판관으로 내정되려면 그 정도는 되어야 했으니까. 생도들 중 다음 번 유한의 아래로 들어갈, 즉 2등으로 입격할 확률이 가장 컸던 사람은 의외로 제 조카인 유지함이었다. 


'다행이다. 가장 다루기 쉬운 놈이군.'

그리고는 집에 돌아와서 방에서 자고 있던 지함을 제 방으로 데려와 앉혀 놓고 뜬금없는 물음을 던졌다.

"이상한 소리처럼 들릴 테지만, 그냥 생각해 봐라. 혹시 정의를 실현해 볼 생각 없느냐."

"예…? 무슨 말이십니까?"

지함이 졸음을 떨쳐내지 못하고 답했다.

"그러니까 그냥 받아들여라. 널 시키는 게 속으로는 그리 내키지 않는다만, 과거를 거친 뒤 관원으로서 일하게 되면서 비상식적인 제도와 정면으로 마주하고, 거기에 절망해서 무너지지 않고 내가 뒤에서 일러주는 대로 그 제도를 고쳐 볼 생각 있느냐는 거다."

"저, 저는 항상 숙부님 말씀이라면 따르지 않았습니까."

그래, 이렇게 나오는 녀석이었지. 이래서 다루기 쉽다고 하는 게다.

"그래? 그러면 네 관직생활 전체를 건다고 해 보자."

"무슨 말씀이신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변함없습니다. 저는 이 있으니까요."


결국 과거를 치른 후, 2등에서 밀려난 유지함은 숙부의 그 말의 의미를 영영 알 수 없게 되었다. 애초에 평소 하던 대로 이수를 따를 뿐이라고 했을 뿐이니, 기억하지도 않고 있겠지.

의외의 결과가 일어나고 말았다. 부동의 1위를 달리던 서윤구가 미끄러져 2등으로 내려앉았다. 아니, 그게 아니라 항상 애매한 중간성적을 내던 이진수의 수직상승 쪽이 더 주목할 만하려나.

'차라리 잘 된 일이다.'

윤구는 괜찮은 성정을 가지고 있었다. 생도였을 때의 성적을 보면 능력도 되고, 인격도 잘 되어 있어 다른 이들과의 관계 또한 원만했다. 실력을 제외하면 모든 면에서 유한과 정반대. 그에게 앞서 지함에게 요구한 것과 같은 단단한 정신력만 있다면 사실 이수가 하려는 일에 가장 적격이었던 이는 윤구였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 보았지만, 유한의 밑으로 들어가게 된 것은 서윤구가 아니었다.

'자네 심정이야 알겠지만, 마음 쓰지 말게. 내가 그리해 달라고 부탁한 거니까.'

차디찬 말투로 서윤구에게 두루마리를 넘기던 날 정식은 집에 돌아가기 전, 관청을 빠져나오자마자 쓴웃음을 지으면서 이수에게 사실을 알렸다. 정식은 그를 걱정하면서 이 일에 신경을 쓰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애초에 가장 커다란 목표가 그 일을 바로잡는 것에 있었던 이수는 그렇게 쉽게 관심을 끊을 수가 없었다. 이수는 그 날 집에 돌아가서, 잡히는 책을 아무 것이나 책상 위에 펴 놓고 그 부분만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내용을 이해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당시의 그는 절망하고 있었다.

유한에게 붙여질 사람은 애초에 정해져 있었으므로.

'….'

이대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이윽고 서윤구와 이진수가 아주 절친한 사이라는 것을 기억해냈다. 유이수가 절망의 늪에서 스스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을 동안, 다행히도 이진수는 늪 밖에 있던 서윤구의 손을 어떻게든 잡고 유한을 끌고 나오려고 하고 있었다. 이수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윤구와 대면했을 때쯤, 그는 이미 그런 기색을 보이고 있었다.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좋은 일이긴 하지만, 문제는 따로 있다.'

권지 서윤구는 괜찮은 성정을 가지고 있었다. 능력도 되고, 인격도 잘 갖추어져 있다. 실력을 제외하면 모든 면에서 유한과 정반대. 이수가 하려는 일에 가장 적합한 사람. 단단한 정신력만 있다면 좋을 텐데. 다른 이의 생각이면 몰라도, 그 생각이 이수의 생각이었다면 그것은 서윤구가 사실은 그렇지 못한 자라는 걸 알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이수가 보기에 윤구는 관원으로서 실무를 수행하기에도 적합한 사람은 아니었다.

"필체 건은 이미 눈치챘네. 아까 당상들 앞에서 말하지 않아서 그렇지."

서윤구가 그런 불안증을 껴안고 있다는 걸 이수는 조금은 짐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애써 무시하는 것이 앞으로 유이수가 하고자 하는 계획에 도움이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김유한이 입직 관원 명단에 올라 있지 않은 판에 이진수와 서윤구 양쪽 모두를 주류에서 제외시킬 수는 없었다. 적어도 한 명만큼은 언제라도 나머지 둘을 끌고 나올 수 있도록 늪 바깥에 세워 두어야 했다. 설령 그 사람이 그곳에서 나머지 두 명치의 모든 불안과 괴로움을 떠안게 된다고 해도.

그러니, 이번 한 번만은 처음 입직한 자의 실수라고 생각하며 넘어가는 것이, 지금의 이수에게는 더 옳은 일이었다.

"권지 서윤구에게는, 선례대로 그가 원래 받았어야 할 만큼의 벌을 내릴 것이네."

"…."

구연이 입술을 깨물었다. 모두 제 잘못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언젠간 일어났을 일이니 자네 잘못이 아니야. 오히려 잘했네. 언젠가 일어날 일이면 처음 세웠을 때 터지는 게 낫지. 이번 건은 선례도 있고 말이야?"

이 정도로 일을 그르친 예는 아니었지만, 비슷한 예가 있긴 있었다.

"아참, 그리고, 앞으로 서 권지를 입직시킬 때는 몰래 옆에 있는 이 봉사도 동행시키든가 하게. 그건 봐 줄 테니. 셋만 알고 있는 장소에 이 봉사를 숨기고 필요할 때 교체하는 게 어떤가?"

구연과 진수는 납득하지 못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던 이수는 결국 둘이 바라는 것을 하나라도 들어 주기로 결정했다. 이렇게 돌려보내기에는 찝찝하기도 했다. 비록 입 밖으로 꺼내진 못했지만 그들이 원할 만한 것, 주변에 최대한 타격이 가지 않는 한에서 들어 줄 수 있는 것은 하나였다.

"그래, 돌아가기 전에 서 권지가 지금 어찌하고 있는지 보러 갈 생각 없나?"

"그, 그래도 됩니까?"

진수의 얼굴에 금방 화색이 돌았다. 일단 윤구를 만나서 뭐라도 묻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잠깐이라면 되겠지. 옆에서 지켜볼 테니, 몇 가지만 물어보고 바로 나와야 하네. 탈옥은 꿈도 꾸지 말라고. 그럼 나까지도 곤경에 처하니까."

"그리할 생각 없습니다."

구연이 손을 저었다.

*

윤구는 좁은 옥사 안에서 눈도 뜨지 않고, 몸을 움직이지도 않고 늘어뜨려둔 채로 마치 시간이 정지한 것마냥 그렇게 힘없이 앉아 있었다. 임시로 하옥된 거라고는 해도, 다른 옥사와 비슷하게 안쪽은 매우 불길한 냄새로 꽉 채워져 있고, 빛조차 제대로 들지 않았다. 눈을 뜨기만 하면 전날의 캄캄하고 끔찍한 기억이 연장선처럼 다가와 그를 뒤덮는 듯 했다. 전날 그를 지배했던 이상한 소리들이 들리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이윽고 윤구는 그 속에 익숙한 소리들이 드문드문 섞여들어오기 시작했다는 것을 눈치챘다.

"…형님, 허안 형님!"

그 소리가 진수의 것임을 겨우 깨달은 윤구가 천천히 눈을 떴다.

"이, 일어나셨습니까?"

"으, 응? 왜 자네가 여길."

"나도 있네."

구연이었다. 반가운 얼굴들이었으나 윤구는 평소와 같이 얼굴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어쩌다 이렇게 되신 겁니까!"

윤구의 정신이 돌아온 것을 확인한 진수가 돌연 한 손으로 그의 관복 자락을 잡고는 소리질렀다. 그 모습을 본 윤구는 겨우겨우 쓴 미소를 지으며 손을 움직여 진수의 손등을 쓸어 주었다.

"경호 자네가 이러는 걸 보는 건 처음인데."

"상황이 심각하니까 이러는 거 아닙니까. 어제 일지엔 또 왜 그렇게 적혀 있는 거구요."

"으응. 근데 자네랑, 소호 형님께서 와 줬으니까 이제 괜찮아…."

요지를 파악하지 못한, 여전히 멍한 눈빛이었다.

"아직 안 괜찮은 것 같은데."

구연이 중얼거렸다.

"그, 그러게요 안 괜찮은 것 같은데 죄송하지만, 하나만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윤구는 아무 것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눈 앞에 있는 녀석이 여전히 반가울 뿐이었다.

"그래, 자네 부탁이니까, 들어 줘야지."

"이 젓가락의 끝과 끝을 마주쳐 보십시오. 이렇게 말입니다."

진수는 언제 챙겨 온 건지 모를 길쭉한 나무젓가락 두 개를 서로 연결해 보였다. 그리고는 윤구에게 쥐어 주었다. 윤구가 살짝 웃음을 지었다.

"갑자기, 이건 왜…?"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두 개의 나무조각은 원망스럽게도 서로를 비껴갔다. 윤구가 당황한 채로 몇 번을 더 시도했다. 그리고는 여러 번의 시도 끝에  겨우 두 개를 마주 연결하는 데에 성공했다.

"내, 내 상태가 지금 좀 이상해서 그런가 보네…."

윤구는 조심스럽게 변명을 내뱉었다.

"평소에 비하면 특별히 이상할 것 없지 않습니까? 아까도 분명 괜찮다고 하셨고."

"이봐, 그건 허안이 우리를 안심시키려고 그랬던 거 아닌가? 저것 보게. 지금도 손이 떨리고 있잖나."

진수는 물러서지 않았다.

"손만 떨리는 거였으면, 아까와 같이 크게 어긋날 일은 없습니다. 그리고 제가 이걸 꺼내기 전에는 손 떠는 게 그리 심하지도 않았는걸요."

윤구가 진수의 손등을 쓸어 주었으므로. 이미 진수는 윤구의 상태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

윤구는 체념한 듯 눈을 감았다. 진수는 윤구의 반응을 무시한 채 계속했다.

"허안(虛眼) 형님의 호는, 비유가 아니라 사실이었군요."

과학(수학, 물리, 화학, 천문학)덕후/그림+글+작곡 등등 이것저것 합니다/트위터 @Owlbam_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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